거기서 야곱에게 축복한지라
[창 32:24~30]
24 야곱은 홀로 남았더니 어떤 사람이 날이 새도록 야곱과 씨름하다가
25 그 사람이 자기가 야곱을 이기지 못함을 보고 야곱의 환도뼈를 치매 야곱의 환도뼈가 그 사람과 씨름할 때에 위골되었더라
26 그 사람이 가로되 날이 새려 하니 나로 가게 하라 야곱이 가로되 당신이 내게 축복하지 아니하면 가게 하지 아니하겠나이다
27 그 사람이 그에게 이르되 네 이름이 무엇이냐 그가 가로되 야곱이니이다
28 그 사람이 가로되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를 것이 아니요 이스라엘이라 부를 것이니 이는 네가 하나님과 사람으로 더불어 겨루어 이기었음이니라
29 야곱이 청하여 가로되 당신의 이름을 고하소서 그 사람이 가로되 어찌 내 이름을 묻느냐 하고 거기서 야곱에게 축복한지라
30 그러므로 야곱이 그곳 이름을 브니엘이라 하였으니 그가 이르기를 내가 하나님과 대면하여 보았으나 내 생명이 보전되었다 함이더라
하나님은 천지 만물을 창조하셨다.
하나님은 자신이 창조한 것들을 인류에게 주시며
이것을 복이라 선포하셨고
인간은 하나님께서 주신 복을
제한 없이 사모하며 살아가고 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피조계의 복이란
인간의 지성적 인격으로 지배할 권리로 소유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은 복을 소유하기 위하여
자신의 생애를 다 바쳐 땀 흘려 수고한다(창1:28~29, 창3:19).
그러나 이와 같은 육신이 누리는 복은
영적 요소가 어디에도 없는 복이며
마귀 사단 귀신이 죄를 짓게 하는
향락과 쾌락의 자원이 되게 하는 것이다.
오직 가득한 욕심으로 최후의 날에 멸망할 뿐이다.
노아의 홍수 때도 그러했고
소돔과 고모라 때도 그러했다(벧후2:5~7).
그러므로 영적 요소가 전혀 없는 복,
육신의 끝없는 욕심으로 밤낮 가지려 하는
세상의 돈, 명예, 권세와 같은 복은
육신으로 생각할 때는 대단한 복 같으나
최후에 남는 것은 멸망뿐이라고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셨다(눅16:19~24).
세상이 그토록 열망하는 물질의 복이란
천국에 가지 못하는 자들도 얼마든지 누릴 수 있는,
마귀역사가 끝없이 유혹하는 세상의 조건인 것이다(눅12:16~21).
본문의 야곱은 육신이 열망하는 큰 복을 가지고도
형 에서의 분노 앞에 죽음이 두려워 몸부림쳤다(창32~33장).
야곱은 죽음을 앞두고서야 진정한 축복을 열망하였으니
자기 목숨을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환도뼈가 위골이 될 때까지 진정한 축복을 요구했다.
야곱은 절박한 기도 응답으로 자기 목숨을 구하고 나서야
진정한 축복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되었다.
누구든지 절박한 기도를 통해서 얻어지는 기도 응답의 축복은
하나님의 전능하신 도움을 얻어내는
최상의 영적인 기업이요, 부유인 것이다.
이와 같은 축복은 누구나 사모하는 이가
기도로 얻어내는 약속이요, 권리인 것이다.
그러므로 온 천하 영광을 얻는 것보다
기도로 능히 불가능을 소멸할 수 있는 영적인 부유가
영원히 큰 축복임을 알아야 한다.
물질의 부유와 건강한 육체를 가지고도 기도하지 않는 자에게는
돈, 명예, 권세와 같은 세상의 복이 잠시 있다 할지라도
하나님을 일하시게 하는 영적인 부유는 전혀 없는 것이다.
부자와 나사로를 생각해 보라.
누가 더 영적으로 부유한 사람이었는지 말이다.
그러므로 어떤 유명하고 권세 있는 자의 이름을 갖는 것보다
언제든지 불가능을 가능케 하는 예수의 이름을
확실한 믿음으로 가져야 한다(요14:13~14, 막16:17~18).
천지간에 해결할 수 없는 죄와 사망과 처절한 지옥의 형벌은
저주의 나무 십자가에서 피 흘리신 구세주 예수의 이름만이
능히 해결할 수 있는 것이다(마1:21, 행2:21, 행10:43).
그리고 예수의 이름만이 우리 육체가 마감되는 그 시간부터
저 천국에서 영원히 살게 하는 구원의 이름, 생명의 이름인 것이다.
사랑하는 연세가족이여,
지금 노아의 홍수 때와 같이, 소돔과 고모라 때와 같이
종말론적 상황 속에서 살고 있음을 잊지 말라.
이 세상은 소망이 없는 곳임을 알아야 한다(벧후3:10~13).
그러므로 오직 야곱과 같이 예수 그리스도를 자기 기업으로 삼아
쉬지 말고 기도하되 열심을 품어 구하고 또 구하여
최후의 날에 내 영혼을 능히 구원하실
예수로 살려 작정하라(사43:1~3, 시146:1~5).